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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년의 역설] [3·끝] 소비자 외면받는 직거래

원래 농민·소비자 직접 연결해 신선하고 값싼 농산물 공급 취지
소매상이 도매로 물건 떼어와 농민 가장해 판매, 신뢰 떨어져

정부 지원 인터넷 직거래도 10%만 운영, 사실상 휴업상태
"명절 때만 하는 반짝행사 아닌 직거래 장터 상설화해야 성공"

"진짜 직접 기르신 것 맞아요?"

지난 22일 경기도 용인 한 아파트 단지 내 직거래 장터. 직접 농사를 지었다는 판매자와 이를 따지는 주부 김선자(45)씨 사이에 실랑이가 한창이었다. 김씨 눈엔 판매대에 올라와 있는 각종 채소가 도저히 방금 따온 농산물로 보이지 않았다. 신선도가 떨어지는 데다 가격도 싸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 이 장터에선 대파 한 단에 1800원을 받고 있었는데, 이날 인근 대형 마트 판매 가격인 1880원과 거의 차이가 없었다.

'풍년의 역설'로 채소 등 농산물 도매가격이 품목별로 40% 이상 폭락했지만, 소비자들은 이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최종 유통 단계인 소매시장에 왜곡이 많기 때문이다.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유통 단계를 줄인 직거래 시장은 신선한 농산물을 값싸게 공급해주는 소매시장이지만, 신선하지도 값이 싸지도 않은 경우가 적지 않아 소비자들로부터 외면받고 있다.

소매가 하락률, 도매가 절반도 안돼

28 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배추 도매가격은 포기당 49% 하락했지만, 소매가격은 34% 떨어지는 데 그쳤다. 심지어 양파는 18% 하락했는데, 소매가격은 7.6% 올랐다. 경기도 분당에 사는 주부 차미애(57)씨는 "채소 값이 작년보다 값이 내린 것 같긴 한데, 그렇다고 부담 없이 장바구니를 채울 정도는 아니다"며 "작년이나 올해나 식탁이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고 말했다

농산물 값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유통비용 때문이다. 농산물 가격에는 포장, 운송 등 유통비용이 포함돼 있는데, 산지 가격에 상관없이 고정돼 있거나, 오히려 오르기도 한다. 배추는 소비자가격의 80% 정도가 유통비용이다.

직거래 가장한 상인 넘쳐나

' 직거래'는 농산물 소매가격을 낮출 수 있는 확실한 대안이다. 농민과 소비자가 바로 만나는 것이어서, 유통비용이 최소화되기 때문이다. 직거래는 1994년 김영삼 정부 때 처음 도입됐다. 그러나 농산물 유통에서 직거래가 차지하는 비중은 4%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가장 큰 요인으로 '신뢰' 문제를 지적한다. 각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직거래 간판을 단 장터가 난립하고 있지만, 알고 보면 상인이 도매시장에서 물건을 떼어 와 농민을 가장해 파는 경우가 많다. 일부 상인은 그룹을 지어 여러 아파트와 돈을 주고 계약한 뒤 옮겨 다니면서 장터를 열고, 멤버가 아닌 사람은 몰아내는 방식으로 영업하고 있다.

한 시민단체가 직거래 장터에 참가한 경험이 있는 농민에게 설문조사한 바에 따르면, 응답자의 80%가 부녀회 등 주최 측으로부터 금품 요구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천일 농림축산식품부 유통정책관은 "무늬만 직거래인 장터들이 소비자 신뢰를 떨어뜨리면서 직거래 확산에 장애물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나마 지방자치단체 등이 주최해 농민들이 참여하는 장터가 열릴 때가 있지만, 명절 직전이나 각종 축제 때 이벤트성으로 잠깐 열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직거래 홈페이지 90% 개점휴업

이런 어려움 때문에 정부는 농민 신청을 받아 7000여개 직거래 홈페이지 개설을 지원했다. 그런데 이 역시 부진하다. 실질적인 활동이 이뤄지는 곳은 10%도 안 된다.

대 부분 농가가 노인 부부 둘이서 농사를 짓는 상황에서, 각 농가가 직접 분류·포장을 완료해 운송과 판매까지 직접 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농촌 지역 평균연령은 64세로, 고령화율(65세 이상 인구비중)이 35.6%에 이른다. 정만기 한국신선채소협동조합장은 "농민들이 혼자 힘으로 농사를 지을 형편조차 안 돼서 유통인들이 자금과 노동력을 공급해 주는 상황인데 판매까지 직접 하라는 것은 현실성이 무척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운영이 미숙한 경우도 많다. 경기도 안성의 한 농민은 "직거래 장터가 열린다고 해서 당시 제철이었던 대파를 가져갔더니 판매 물품의 3분의 1이 대파였다"며 "소비자들은 다양한 농산물을 구입하고 싶어할 텐데 기본적인 품목 관리조차 안 돼 대파만 가득한 것을 보고 혀를 차고 돌아왔다"고 말했다.

직거래 장터 상설화가 핵심

정부는 지방자치단체 등과 연계해 농산물 유통에서 직거래 비중을 현재 4%에서 2016년까지 10%로 높이겠다는 목표를 세운 상태이다.

이 를 현실화하려면 투트랙(two-track) 식 접근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도시와 멀리 떨어진 농촌은 생산과 유통 규모를 키워 대량 공급처로 육성하고, 직거래 대상은 도시 인근 농촌으로 한정하는 것이다. 안재경 농협 팀장은 "직거래 장터가 성공하려면 시장을 상설화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도시마다 인근 농촌 농산물을 365일 판매하는 상설 직거래 장터가 개설돼야 자리 잡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서울 북부 지역에 경기도 파주에서 기른 농산물을 판매하는 장터를 설치하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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